Chapter III. Of Individuality, as One of the Elements of Well-Being
1. 의견의 자유에서 삶의 자유로
사람이 의견을 만들고 표현할 자유가 필요하다면, 그 의견을 자기 삶에서 실천할 자유도 같은 이유로 필요하다. 물론 행동은 의견과 완전히 같은 정도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의견도 표현되는 상황이 타인에게 해로운 행동을 직접 선동한다면 보호 범위를 잃을 수 있다. 곡물상은 가난한 사람을 굶기는 자라는 의견은 신문이나 책에서 주장될 때에는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흥분한 군중이 곡물상의 집 앞에 모인 상황에서 같은 말을 외치거나, 그 집을 공격하라고 적힌 글을 나누어 준다면 그것은 해로운 행동의 직접적 선동이 될 수 있다.
타인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악을 끼치는 행동은 통제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책임 아래 이루어지고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주지 않는 행동은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은 자기 의견을 삶의 방식으로 시험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삶을 필요로 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모형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인간 경험이 제공할 수 있는 다양성과 발전 가능성을 잃게 된다.
개성은 단지 예술가나 천재에게 필요한 특별한 성질이 아니다. 인간의 행복과 발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각자가 자기 능력과 성향을 사용해 삶을 선택할 때 판단력, 욕망, 책임감, 도덕적 성격이 함께 발달한다. 다른 사람이 정해 준 계획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올바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하고 비교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잃는다. 인간의 능력은 사용함으로써 강해진다.
관습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선택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무엇이 더 나은지 분별할 필요도, 서로 다른 이유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 결과 지각, 판단, 식별력, 정신 활동, 도덕적 선호 같은 인간적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는다. 사람은 단지 행동의 결과만으로 평가되는 기계가 아니다. 자기 삶의 계획을 스스로 세우는 과정 자체가 인간을 형성한다.
인간의 본성은 정해진 모형에 따라 제작되는 기계와 같지 않다. 그것은 내부의 힘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성장하는 나무와 같다. 각 사람의 개별적인 성향과 능력은 성장의 재료이며, 좋은 삶은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발달시키는 데 있다. 욕망과 충동 자체가 강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양심과 판단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경우다. 강한 충동은 강한 에너지의 다른 이름일 수 있으며, 제대로 길러지면 위대한 성격의 원천이 된다.
욕망이 약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과, 강한 욕망을 의지와 판단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같지 않다. 후자의 성격이 더 풍부하고 강하다. 사회가 인간의 충동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악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활력과 독창성도 함께 약화시킨다. 역사적으로 강한 성격은 사회가 아직 충분히 규율되지 않았던 시대에 두드러졌다. 당시에는 그 에너지를 통제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문제는 오히려 사회적 규율이 지나치게 강해 개인의 힘과 독자성을 약화시키는 데 있을 수 있다.
어떤 종교적 이상은 인간 본성이 근본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자기 의지를 완전히 꺾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관점에서 인간의 장점은 복종이며, 자기 안의 개별적 성향을 발전시키는 것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과 욕망이 신적 창조의 일부라면, 그것들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 목적일 수는 없다. 인간은 자기 본성을 뿌리째 뽑는 대신 그것을 길러 더 높은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
서구 문화에는 자기 부정의 이상과 자기 발전의 이상이 함께 존재해 왔다. 한쪽은 욕망을 억제하고 복종하는 성격을 높이 평가하며, 다른 쪽은 인간의 능력과 개성을 풍부하게 발달시키는 것을 중시한다. 밀은 어느 한쪽의 단순한 승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자기 부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개성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한다고 본다.
개성은 예측하기 어렵다. 관습을 따르는 사람은 통제하기 쉽지만 자기 판단으로 사는 사람은 사회가 기대한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사회는 독창성을 말로 칭찬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불편해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이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습관이 보편적 기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관행은 언제나 처음에는 소수의 개인에게서 나온다. 평범한 사람도 기존의 좋은 것을 유지할 수 있지만, 더 나은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험하는 일에는 독창적인 개인이 필요하다. 독창성은 흔하지 않으며, 흔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보호되어야 한다. 사회가 독창적인 사람을 억압하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가능성을 미리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재는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며, 사회가 만든 좁은 틀 안에서 편안히 움직이기 어렵다. 사회가 천재에게 자기 방식을 포기하고 관습에 맞추라고 요구한다면 그 특별한 능력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천재의 독창성에는 과장과 오류가 섞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하면 독창성 자체도 제거된다. 강한 사람을 평균적인 모형에 맞추는 사회는 안전해 보일 수 있으나 정체된다.
독창적이지 않은 사람은 독창성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새로운 생각이 나오기 전에는 그것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기존 관행과 지식도 과거의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결과다. 오늘의 상식은 어제의 혁신이었다. 따라서 독창성을 불필요하다고 보는 태도는 자신이 누리는 문명의 기원을 잊는 것이다.
자기 방식대로 사는 개인은 자신만을 위해 삶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어떤 삶이 더 풍부하고 어떤 선택이 위험한지 사회 전체가 배울 수 있다. 삶의 다양성은 인간 발전을 위한 실험실과 같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을 따를 때에는 그 방식의 결함을 발견하거나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렵다.
개성의 자유가 과거의 경험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배우고 조언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경험은 각 개인의 상황과 성격에 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조건과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삶의 계획은 기성복처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맞지 않는다.
유럽이 역사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성격, 제도, 종교, 지역 문화가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하나의 고정된 모형으로 완전히 통일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중심들이 각자의 길을 시험했다. 이 다양성은 갈등을 낳았지만 동시에 정체를 막았다. 서로 다른 경험이 비교되면서 더 나은 제도와 생각이 살아남을 기회가 생겼다.
밀은 중국 문명을 높은 수준의 재능과 제도를 오래전에 이룬 사회로 보면서도, 지나친 획일성과 관습의 지배 때문에 이후의 발전이 멈추었다고 평가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지혜의 체계에 맞추어졌고 개별적 독창성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평가는 19세기 유럽인의 제한된 인식이 반영된 부분이므로 최종판에서는 역사적 맥락을 알리는 편집 주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논증의 핵심은 어떤 사회든 획일화가 굳어지면 발전 능력을 잃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유럽은 다양성 덕분에 발전했지만, 근대 사회의 여러 변화는 사람들을 점점 비슷하게 만들고 있다. 교육, 언론, 교통, 상업, 정치 참여의 확대는 지식과 기회를 넓히면서도 동시에 같은 의견과 생활방식을 빠르게 퍼뜨린다. 사람들은 같은 글을 읽고, 같은 소식을 듣고, 같은 목표를 추구하며, 사회적 차이도 줄어든다. 이러한 변화에는 큰 이익이 있지만, 개성의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계급과 지역과 종교집단이 각자의 관습을 유지했다. 현대에는 여론이 사회 전체에 빠르게 확산되어 개인의 생활을 세밀하게 감시한다. 법보다 여론이 더 강한 획일화의 힘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법적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회적 승인에 대한 욕구가 자기 삶의 선택을 대신한다.
대중사회의 정치적 힘이 커지는 것은 평등의 진전이다. 그러나 대중의 평균적 취향이 유일한 기준이 되면 정신적 지도력과 독창적 판단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밀이 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다수의 습관이 모든 삶의 모형을 결정하는 상황이다. 평등은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인이 동등한 자유를 누리게 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더 넓게 보고 더 멀리 생각하는 개인이 필요하다. 이들이 다른 사람을 강제로 지배해서는 안 되지만, 자기 길을 열고 본보기를 보여 줄 자유는 가져야 한다. 대중은 새로운 가능성을 즉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독창적인 시도를 다수의 즉각적인 승인에 종속시키면 사회는 이미 익숙한 것만 반복하게 된다.
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 공동생활에 필요한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그 한계 안에서는 자신의 취향과 성격에 맞게 살아갈 공간이 필요하다. 사회적 유대는 모두가 같아질 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며 협력할 때 더 성숙해진다.
강한 개성이 드문 사회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는 일이 기이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기이함이 많다는 것은 사회가 다양한 성격을 허용한다는 표시일 수 있다. 개성이 강한 곳에서는 비전형적인 삶도 자연스럽다. 밀은 단순히 이상한 행동을 찬양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관습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행동을 비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개성은 인간의 행복을 구성하고 사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각자가 자기 성격에 맞는 삶을 시도할 자유는 이기적 특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을 성장시키는 조건이다.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해야 한다. 사회는 개인을 하나의 모형에 맞추기보다 서로 다른 성격이 스스로 발달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